영화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차분하게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팩트(Fact)’ 자체가 주는 데이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야 이 작품이 ‘슬기롭게’ 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분노와 같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2010)이 롤모델이었어요. 표현 방식이나 만든 사람의 위치 등을 참조했는데 그런 태도가 맞는다고 봤어요. ‘조중동’ 나쁜 거 아는 상황에서 조롱만 하고 안 좋은 면만 부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죠. <슬기로운 해법>은 김성재 작가의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이 원작이에요. 다큐멘터리가 원작을 갖고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문데 말이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은 참여정부 시절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언론사 간의 관계들, 특히나 서거 직전에 몇 달 동안에 보수 언론들이 어떻게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에 초점을 맞췄어요. 사례를 중심으로 분노에 차서 쓴 글이죠. 쓰신 분이 이 영화의 기획자입니다. 제 입장에서 이 책을 당연히 참고 안 할 수 없었죠. 사실 저는 참여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하는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다만 언론과 언론 문제에 관해 정치인으로서 문제의식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이를 바꾸기 위해 실질적으로 행동에 나섰던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참여 정부 시절의 언론간의 관계, 부동산에서의 종부세 문제 등으로 영화의 축을 잡았던 겁니다. 오히려 원작을 확대 발전시켜야 했는데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서거와 관련한 부분은 차분하게 가고 팩트를 이끌어내서 작업했어요. 원작이 중요한 시발점이었지만 참고자료였던 거죠. 그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팩트를 중요시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화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어요. 맞아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네가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느냐, 하는 반응. 오히려 아직까지도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을 지금까지 가질 필요는 없고, 지난 정권의 역사적인 평가와 별개로 지금에 와서 새롭게 바라보는 부분을 다뤘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죠.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죠. 언론과 관련되어 있는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왔던 일들, 그 의미를 정리하는 걸로만 하고 다른 얘기를 하지 말자,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했어요. 물론 감정적으로 참여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언론에 관한한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
![]() 원작과 마찬가지로 5장 형태로 되어 있어요. 하지만 내용은 달라요.
원작의 구성과 영화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언론사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그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봤죠. 언론이 어떻게 사적인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펜을 사용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근데 조중동이 위기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어떻게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었나, 그래서 종편이 위험하다는 영화 속 구성이 들어가게 됐고요. 그러면 이 앞에 모든 이야기를 관장하는 백그라운드에 현재 어떤 존재가 있을까, 의문을 갖다 보니까 삼성이 나오게 됐죠. 그런 식의 논리적인 흐름을 가져가려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기로워야 한다는 식의 에필로그가 들어갔습니다. <슬기로운 해법>이라는 제목은 중앙일보의 연재 기획 기사에서 가져왔어요. 처음에는 <야만의 언론>이었어요. 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제목을 정해놓지 않으면 작업을 못해요. 그런데 제목으로 <야만의 언론>은 아무리 봐도 아닌 거예요.(웃음) 취재 시작하고 나서 한 달 후에 <슬기로운 해법>을 정해졌어요. 정연주, 주진우, 홍세화 등 많은 언론인들이 인터뷰이로 나옵니다. 하지만 조중동 쪽 관련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아요. 영화적으로도 그렇고 넣어봐야겠다, 제작 과정에서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 명을 접촉했어요. 조갑제 씨. 굉장히 완곡하게 친절한 어법으로 못나오겠다며 팩스로 회신을 보냈어요. 굳이 바짓가랑이 잡으면서 출연시킬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안 들어가게 됐고요. 종편에서 생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볼까 하다가, 구성을 잡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의 말을 넣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어떻게 보면 저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입장일수도 있어요.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쪽 이야기를 하려면 저쪽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보통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저는 옛날부터 배운 게 ‘우리 쪽 사람 얘기 듣는 것도 바빠’라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만날 TV에서 얘기하는데, 내 영화 위해서 따로 들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어요. |
영화도 개봉했고 최근 공영방송의 자정 분위기도 목격되고 있는데요. 감독님은 이 ‘야만의 언론’이 개선될 거라고 보시나요?
당장 개선이 보이지는 않겠죠. 이 작품에 대해서는 바람이 있죠. 하지만 독립 영화의 극장 개봉이 미약한 상황에서 작품의 파급력에 대해 크게 기대하진 않아요. 다만 영화 속에서 <미디어스>의 한윤형 씨도 얘기했듯이, 조중동이 담당하고 있는 활자화된 담론이 이쪽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게토화 되었죠. 그러면서 조중동의 폐해가 더 심화되고 확대된 건 반대 쪽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또 다른 언론 운동, 개혁을 하기 위한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글 허남웅 객원기자 | 사진 공주은
출처: 맥스무비
2014.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