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10%만 쓰는 병원, 비결은?"[제3의 대안, 의료생협·①] "주치의는 대통령만 필요한 게 아니죠"기사입력 2011-03-30 오전 11:45:08 요즘 정치권에서는 복지가 화두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의료 분야로 번졌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해서 사실상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도 있다. 적자 상태인 건강보험 재정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확충 방안을 빠뜨린 의료 논쟁은 허구라는 게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의료 행위가 시장에 휘둘릴 때 생기는 폐해를 잘 보여준다. 다른 서비스와 달리, 의료 서비스는 소비자(환자)의 선택권이 크지 않다. 병원을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지만, 그 뒤로는 모두 의사에게 결정권이 있다. 보통의 환자라면, '내가 왜 이런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이런 처방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등을 판단할 수 없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기 마련이다. 과잉 진료가 생기는 이유다. 그리고 과잉 진료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중요한 이유다. 시장에 휘둘리는 의료가 낳은 폐해는 또 있다. 이른바 '닥터 쇼핑'이다. 환자가 보기에, 의사는 기술과 지식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신뢰 관계가 마련되기는 힘들다. 환자는 의사의 검사 및 치료 행위를 늘 의심하게 된다. '돈벌이를 위해 불필요한 치료를 강요하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의사가 조금만 못 미더워도 병원을 바꾸는, '닥터 쇼핑' 현상이 생기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환자가 병원을 자주 바꿀 경우, 이미 했던 검사나 치료를 반복하는 일이 생긴다. 결국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된다.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은 일차적으론 정부와 건강보험관리공단의 몫이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를 폐지하는 것, 불필요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 등이 과제로 꼽힌다. 진료 행위마다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돈을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는 과잉진료를 낳은 주요 원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 또 '치료 중심' 의료에서 '예방 중심' 의료로 넘어가는 것 역시 과제다. 이를 위해선 공공의료 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국민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해줄 수는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또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가 나쁘듯, 정부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구조 역시 한계가 있다. 정부(제1부문), 시장(제2부문)에 이은 '제3부문 경제'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조직, 이익을 절대 가치로 삼는 기업 등과는 다른 작동원리를 지닌 '협동조합'이 '제3부문 경제'의 대표적인 구성요소다. 협동조합은 기업보다 공공성이 강하고, 정부보다 덜 관료적이다. 의료 영역에선 '제3부문 경제'가 일찍부터 소개됐다.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이다. 의료생협이란 지역주민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병원이다.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므로 '과잉진료'가 생길 가능성도 적다. 역시 같은 이유로, 질병의 예방에도 힘을 쏟게 된다. 또 환자 역시 병원을 동네 사랑방처럼 편안하게 여긴다.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으므로, 환자와 의사의 관계 역시 안정적이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한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낳은 여러 이유들이 사라지는 셈이다. 또 의료생협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다.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협동조합이 활성화되게끔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생협이 꼭 좋은 모습만 지닌 것은 아니다. 돈벌이가 아니라 주민의 건강을 목적으로 삼는 의료생협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의료시설이 의료생협이라는 이름을 내건 경우도 많다. 흔히 '사무장 병원'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한마디로 가짜 의료생협이다. 이는 소수 투자자가 영리 목적으로 편법적으로 개설한 곳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제3부문 경제', 의료 공공성 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숙제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의료생협의 현주소와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지역 주민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병원" 누구나 병원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1시간을 기다렸지만 진료는 3분을 넘기지 않고 끝났을 때, 의사로부터 '내가 왜 아픈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없을 때, 병원이 권하는 비싼 진료가 의심스러울 때, 환자들은 생각한다. "내 건강 상태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는 의사, 꼭 필요한 검사와 치료만 권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의사는 없을까?" 일반적으로 의사가 직접 소유하고 개설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은 '서비스 이용자'일 뿐이다. 반면 의료생협은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하는 조직으로 소비자 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만든 협동조합'이다. 지역 주민은 의료생협을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이사회나 대의원회를 통해 자신들이 필요한 요구사항을 반영한다. 국가도 시장도 아닌 '사회적 소유'의 형태를 띠는 게 의료생협이다. 생협법상 300명 이상의 조합원과 3000만 원 이상의 출자금이 있으면 개설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 시장 원리로만 작동하는 조직과 다른 점은, 직접 민주주의를 잘 실현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에서는 출자한 자본금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조합원이 '1인 1표'를 행사한다. '1주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과 다른 점이다. 또한 한 사람이 전체 출자금의 1/5 이상 출자할 수 없다. 운영 목적을 수익 창출이 아니라 '내 병원과 내 주치의를 갖고 싶다'는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두도록 독과점이 금지된다. 그러다 보니 지역주민의 주인의식이나 참여가 중요해진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의 김명일 원장은 "의료생협에선 주민들로부터 '병원이 어떻다, 실무자는 어떻다, 운영이 어떻다'는 웅성거림을 늘 듣게 된다. 그리고 그게 협동조합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주민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은 의료생협의 최대 장점이다. 한국에는 1994년 안성의료생협을 시작으로 인천, 서울, 안산, 대전, 원주, 전주, 청주, 용인, 성남, 수원 등 전국에 15개 의료생협이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대에 가입했다. "믿을 수 있는 의사, 나의 주치의가 생긴다"
환자들에게 의료생협이 주는 최대 장점은 '믿을 수 있는 나의 주치의'가 생긴다는 점이다. 의료생협 의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사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선생님'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자 건강에 대한 조언자'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편하게 병원에 다니면서 의료정보를 얻을 수 있다. 김명일 원장은 주치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에게는 전담 주치의가 있지만 국민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게도 주치의가 필요하죠. 물론 단골의사는 있을 수 있겠지만, 환자와 단골의사와의 관계는 진료실 안에서만 이뤄질 뿐 지역 사회 내에서의 집단적인 관계는 아니지요. 의료생협 의사는 지역 주민들의 주치의입니다. 왕진가방을 들고 직접 환자를 찾아갑니다. 환자들도 스스럼없이 의사에게 오고요. 진료실 밖에서도 이웃처럼 지내면서 건강과 질병에서의 조언을 주는 사람이 의료생협 의사입니다."
"치료보다는 예방과 재활이 중요하죠" 의료생협의 또 다른 특징은 치료보다는 재활과 예방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자치활동, 보건예방활동, 지역복지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김 원장은 "의료생협은 지역주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취약계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공공의료나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미충족된 건강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의료생협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의료 시스템은 치료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병만 다룰 때는 치료가 제일 중요하지만, 건강을 돌본다는 넓은 의미에서 의료를 보면 치료는 하나의 부분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의료생협이 방문진료, 가정간호사업소, 재가장기요양기관 등을 운영하는 이유다.
문제는 의료생협이 하는 비치료적, 예방적 행위가 사회적 보상 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방문진료를 하거나 가정간호사업소, 재가장기요양기관 등을 운영하다 보면 경영난에 시달리기 일쑤다. 공공의료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가 생길 때면 의료생협 의사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뇌졸중으로 몸 한쪽이 마비된 환자가 있었어요. 진료실에 왔는데 하루는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재활치료를 받을 데가 마땅치 않으니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타다가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답답했죠. 급성기 환자들은 큰 병원에 가면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지만 길어야 2~3개월밖에 못 있거든요. 그렇다고 공공의료기관이 이런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역 장애인 복지는 아동을 중심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성인들은 재활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공공의료가 잘 돼야 의료생협이 잘 된다" 이 때문에 의료생협 운영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료생협을 운영하는 것이다. 의료생협이 대안적인 제도로 자리잡는 데는 자원이 필요하다. 결국 공공의료가 확충되야 한다. 이들은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예방적인 의료 행위에도 건강보험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서는 방문진료 수가가 다른 진료보다 10배 높다. 한국은 방문진료 수가 자체가 없다. 김 원장은 "의사가 병원 문을 닫고 환자를 진료하러 나갈 수는 없다"며 "물론 퇴근 후에 개인적으로 방문진료를 가는 의사도 있지만, 문제는 제도화가 안 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의사 개인의 선한 의지에 의한 진료는 오래갈 수 없고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의료생협이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국가가 사회적 자본인 의료생협을 이용할 때도 있다. 의료생협은 도시보건지소와 같은 공공의료 기관에서 하는 일정 기능을 도맡기도 한다. 보건소가 의료생협 의사에게 건강교육이나 방문진료를 요청할 때도 많다고 한다. "보건소에선 방문간호사 10명이 1년에 7000가구를 방문해요. 간호사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어요. 의사가 직접 가서 의학적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데, 간호사들이 방문하다 자기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가 있으면 의료생협에 연락을 해오죠." 의료생협과 같이 기존의 사회적 자본을 모아서 사업하면 국가로서는 추가 예산이 별로 안 든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역 사회 요구에 맞는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사회자본을 모은다면, 지역사회 자원을 동원하기 쉽고 의사결정에도 참여하고 결정된 의사결정을 주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국가가 미니멈이라면 의료생협은 맥시멈" 그렇다면 국가가 주치의제도를 시행하고, 의료취약계층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확충하면 의료생협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의료생협은 공공의료의 외연을 넓히는 기능을 한다. 지금은 의료생협에서만 시행되는 주치의 제도가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잡는 날이 온다면, 의료생협은 또 다른 '대안 모델'을 만들어 낼 게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가진 장점 때문이다. 아무래도 협동조합은 정부기구나 개인 소유 병원에 비해 주민들의 요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의료생협이 만든 대안이 공공의료 부문에서 받아들여지고, 의료생협은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는 결국 공공의료 부문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 예로, 국가가 가정간호사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훨씬 전부터 인천평화의료생협은 가정간호사업을 실시했다. 국가가 보조하는 수가가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의료생협은 '수익'이 아니라 '필요'를 고려했다. 김 원장은 "지금도 병원은 병상회전율 높이기 위해서 가정간호사를 없애는 추세"라며 "의료생협은 국가나 시장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의료공공성 모델을 만든다"고 말했다. "물론 국가는 의료생협의 영역을 조금씩 포섭할 겁니다. 하지만 국가가 하는 것은 미니멈(최소한)이죠. 생협이 하는 일은 맥시멈(최대한)이 될 수 있어요. 생협은 국가가 생각 못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어요. 국가가 하는 최저치의 다음 선은 생협이 합니다. 협동조합에는 자율과 자치 영역이 있거든요. 지역사회 단위에서 스스로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웅성거림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죠. 지역 사회의 건강욕구가 한두 개도 아닌데 할 일은 여전히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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