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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단원고를 다시 살리자
나준식(knajs) | 2014-05-10 | 12136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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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단원고를 다시 살리자

[중앙일보] 입력 2014.05.09 00:33 / 수정 2014.05.09 00:39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봄이 지나가지만 봄을 느끼기 어렵다. 채 피지도 못한 꽃을 바다에 이리 많이 묻고 봄을 느낄 순 없는 일이다. 지금은 봄을, 생명을,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죄스러운 마음이다. 그래도 봄은 봄이고 꽃은 핀다. 그 많은 아이가 떠난 단원고에도 꽃은 피고 나무가 자란다. 무거운 공기가 교정을 잔뜩 누르고 있지만 속절없이 교정은 푸르다.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학교가 다시 열린 것이다.

 학교가 열리는 과정에서 많은 우려가 있었다. 소중한 친구와 선후배가 생사도 모른 채 바다에 남아있는데 수업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분노부터, 충격을 받은 아이들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공부가 과연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현실적 염려까지 다양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해에 근거한 것이다. 학교를 다시 연 이유는 떠나간 생명이 소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공부가 급해서도 아니다. 더 이상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의 직접적인 당사자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직접 재난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당사자들과 가까운 사람은 함께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당사자들에 비하면 적지만 이들 중 상당수도 재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의해 장기간 고통을 겪는다. 그중엔 잘못된 결정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고 심리적인 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얼른 연 이유는 이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재난 이후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접근할 때 학교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함께 모여 슬퍼하고 위로하며, 슬픔의 시간을 통과하는 데 학교만 한 곳은 없다. 평소엔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지만 위기일수록 강력한 힘을 갖는다. 개인은 취약하다. 재난으로 취약해진 상태에서 홀로 남게 되면 삶의 파도와 감정의 높은 물결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지금 그런 공동체는 학교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단원고가 다시 열린 후 학교에 나온 1학년, 3학년 아이들은 한결 편안해한다. 예전엔 한없이 지겨웠던 학교였는데 이렇게 나오고 싶을 줄 몰랐다는 아이도 있고, 그래도 모여 있으니 견디기가 한결 수월하다는 아이도 있다. 지난 일주일 학교 수업은 정상 교과과정이 아닌 심리 회복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비어 있는 2학년 교실을 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이젠 두려움에 도망치지 않고 슬픔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물론 정면으로 슬픔을 바라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단원고의 정상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학교 여기저기엔 추모의 글귀, 바다 속에 버티고 있을 아이들을 향한 격려의 글귀가 붙어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것을 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글귀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아이들, 하늘로 떠난 아이들, 아직 살아있으리라 믿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너희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한다고 보여주길 원한다.

 이제 오래지 않아 그 글귀를 봐야 할 2학년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올 것이다. 이 아이들은 지금보다 돌아와서가 더 힘들지 모른다. 대부분은 괴로운 기억이기에 생각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애써 잊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잊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괴롭더라도 구석에 처박아둘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시간을 자기 내면에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힘든 과정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 시간 내내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고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왔다고 학교가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정상화는 죽은 아이들이 모두 돌아와야 한다. 물론 육체를 갖고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이곳에 함께해야 한다. 학교는 살아남은 자와 떠난 아이들을 갈라서는 안 된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은 자식이 떠난 학교를 잊을 수 없다. 차라리 살아남은 아이들은 학교를 잊을지언정 떠난 아이들의 부모는 학교를 잊을 수 없다. 그 학교는 이제 영원히 내 아이가 머물 학교다. 행정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학교는 부모들이 학교에 마음을 두고,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치유받고 학교의 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인간에게는 강한 회복력이 있다. 사회에도 공동체에도 회복력이 있다. 지금 약해져 흔들리더라도 함께 모여 서로 믿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모여 고통의 진흙탕에서 희망이라는 연꽃을 피워야 한다. 고통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며 살아남을 때 인간은 가장 강해질 수 있다. 학교를 살려 희망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기 전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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